서울시, 영화 속 '남영동 대공분실' 터에 인권현장 바닥동판

기사입력 2018.01.1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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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박종철 열사 31주기 ‘남영동 대공분실 터’ 등 6곳에 인권현장 바닥동판 추가 설치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경찰은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황당한 변명으로 고문사실을 은폐하려고 했지만 결국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하다가 숨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같은 해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서울대 언어학과 2학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서울시가 고(故) 박종철 열사의 31주기('18.1.14.)에 맞춰 ‘남영동 대공분실 터’에 인권현장 바닥동판을 설치 완료했다고 밝혔다.

건물 외부 출입구 근처 바닥에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역삼각형 형태(가로‧세로 35cm)로 설치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지하철 1호선 남영역 인근)은 고 박종철 열사와 민주화운동의 거목으로 불리는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 군사독재 시절 수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끌려와 강도 높은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현재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희망찬 미래를 향한 경찰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통해 反 인권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던 남영동 청사에 ‘박종철 기념전시실(2005년)’을 운영 하는 등 인권수호의 메카로 국민과 소통하는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 중에 있다.

이와 함께 ▴민주화운동 당시 단일사건 최대인 1,288명의 학생이 구속 당한 ‘10.28 건대항쟁 자리’ ▴민주인사 등에게 고문수사를 했던 국군보안사 서빙고분실 ‘빙고호텔 터’ ▴일제강점기 여성인권을 탄압한 대표적인 기생조합인 ‘한성권번 터’ ▴미니스커트‧장발 단속 등 국가의 통제와 청년들의 자유가 충돌했던 ‘명동파출소’ ▴부실공사와 안전관리 소홀로 49명의 사상자를 낸 ‘성수대교’ 등 5곳에도 인권현장 바닥동판 설치를 완료했다.

20180111_203904.png▲ 사진/서울시
 
이로써, 서울 시내에 설치된 인권현장 바닥동판은 총 45개로 확대됐다. 서울시는 근현대 흐름 속에서 벌어졌던 인권탄압과 이에 맞서 저항했던 인권수호의 생생한 역사를 품고 있는 곳에 황동으로 만든 바닥동판을 설치해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는 ‘인권현장 표석화 사업(인권서울기억)’을 '15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시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1894년부터 2000년까지 인권사의 역사적 현장 가운데 시민‧전문가 추천, 전문가 자문회의 등을 거쳐 최종 62곳을 선정 완료했다. '16년에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4.18 선언’이 있었던 안암동 현장, 호주제‧동성동본 혼인금지제도 폐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 39개소에 바닥동판을 설치했다. 

이에 앞서 '15년에는 ‘세계인권선언의 날’(12.10.)을 맞아 서울시청 앞 녹지대에 인권조형물(1개소)과 남산 옛 안기부 자리에 인권현장 안내 표지판(9개소)도 설치했다.

<민주화운동 당시 단일사건 최대인 1,288명의 학생이 구속 당한 '10.28 건대항쟁' 자리>
‘10.28 건대항쟁’은 '86년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66시간50분 동안 건국대에서 전개된 민주화운동이다. 당시 건국대 본관 앞에서 민주화시위를 하던 전국 27개 대학,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을 경찰이 5개 건물로 몰아넣고 작전명 ‘황소 30’이라고 명명된, 헬기까지 동원된 작전으로 진압했다. 1,525명이 연행되고 1,288명의 학생이구속 당해 단일사건으로는 사상 최다 구속 기록이었다. 바닥동판은 건국대에서 조성한 ‘10.28 건대항쟁 기림상’ 앞에 설치됐다.

<민주인사 등에게 고문수사를 했던 국군보안사 서빙고분실 일명 ‘빙고호텔 터’>
국군보안사 서빙고분실은 악명높은 고문수사시설 중 하나로 '72년 10월 유신 이후 ‘빙고호텔’ 등으로 불리며 군사정권 시절 공포정치의 대명사로 통했다. 국군보안사 서빙고분실은 1990년 국군보안사가 민간인 정치사찰 중지를 선언하고 국군보안사에서 국군기무사령부로 명칭을 바꾸면서 폐쇄‧철거됐으며, 현재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국군보안사 서빙고분실은 1957년부터 1990년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정치에 개입하면서 민간인을 간첩으로 둔갑 시키거나, 군부 권력에 비협조적인 사회 각계 인사를 끌고와 회유나 협박을 자행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으며, 민주인사 등에게 고문수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제도적으로 여성인권 탄압한 대표적인 기생조합 ‘한성권번 터’>
‘권번’은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일종의 기생조합으로, ‘한성권번’은 여성인권을 탄압한 대표적인 기생조합(1918년~1942년)으로 알려져 있다. 요릿집 출입을 관리하고 기생의 놀음차(화대)를 대신 받아주는 일종의 소속사 기능을 하면서 기생들의 입회비, 월회비, 수입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가며 기생들을 조직적으로 착취했다. ‘한성권번’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프리미어플레이스 빌딩이 들어서 있고, 도시기반시설본부, 시민감사옴부즈만위원회 등 서울시 부서가 입주 중이다.

<미니스커트·장발단속 등 국가의 통제와 청년들의 자유가 충돌했던 ‘명동파출소’>
‘명동파출소’는 1970년대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이 이뤄지던 당시 국가의 통제와 청년들의 자유가 충돌하던 대표 현장으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질서 정비와 치안 유지 업무를 수행 중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언론 및 시민 언행권 탄압을 선포한 1972년 10월 유신에 따라 ‘개정 경범죄 처벌법’을 만들어 장발과 미니스커트 등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에 대한 단속을 시작했다. 장발단속에 걸린 이들은 강제로 머리를 깎이고, 법이 정한 치마길이 한계선(무릎 위 20cm)을 넘긴 이들은 즉결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부실공사와 안전관리 소홀로 다리가 무너져 총 49명 사상자 낸 재난현장 ‘성수대교’>
성수대교는 부실공사와 안전관리 소홀로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일어난 대표적 재난현장이다. 사고 이후 기존 성수대교를 허물고 새로운 성수대교를 완공했으며('96.3.~'97.7.) 자재뿐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지진에 대비할 수 있게 설계하는 등 안전성을 대폭 개선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 경 성수대교 10번째와 11번째 교각 사이에 있던 120m 중 중앙 48m의 바닥이 푹 꺼지면서 한강으로 내려앉았고, 당시 출근과 등교 중이던 학생․직장인 등이 차량과 함께 추락하여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치는 대참사였다.

한편, 서울시는 작년 인권현장을 시민들이 쉽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을 곁들인 도보 탐방코스 7개를 개발하고, 이중 4개 코스(▴민주화(4월길, 6월길) ▴사회연대(여성길) ▴남산(자유길))를 운영한 결과 26회('17.9.~11.)에 걸쳐 시민‧학생 등 1,300여 명이 참여해 호응이 높았다고 전했다. 시는 올해도 인권현장 바닥동판 설치와 탐방 프로그램 운영을 지속해나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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