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의원은 15일 열린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작년 4월 16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기우뚱하게 세월호가 누워있고 주변을 경비정 몇 척이 한가롭게 떠다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면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머릿속으로는 그 안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생각하면서 고통스러웠습니다.
▲사진=뉴시스인용
부잣집 아이들은 수학여행 갈 때 비행기타고 가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새벽부터 배타고 실려 가다가 비극 당했다는 것 때문에 가슴이 더 아팠는지도 모릅니다. 온 국민이 분노했고 슬퍼했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습니다. 이 국민적 분노와 슬픔을 좋은 세상 만드는 힘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 그렇게 하겠다, 저도 그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눈물 철철 흘리시면서, 눈물을 닦지도 않고, 세월호 이전과는 다른 나라를 만들겠다, 국가 대개조라는 말씀도 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대한민국>은 오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어떤 변화의 조짐도 우리는 접할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고, 정치하는 한사람으로서 국민께 죄송하고 많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많은 국민들이 요구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대한민국>은 어떤 대한민국인 것인가. 저는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생존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대로 가도 좋은가, 이대로는 살 수 없다. 이런 나라에 살고 싶지 않다. 이민가고 싶다, 그런 말씀들에 담긴 뜻이 무얼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순서를 다시 정하자는 것이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요구가 아니었을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저마다가 존엄한 인간으로 대접받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었을까. 이제는 돈과 기회와 권력을 독점한 잘난 사람들이 자기들 끼리끼리 잘 살면 그만인 나라가 아니라, 돈 없고 빽 없는 사회 구성원까지를 포함하는 모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행복을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는 나라, 그런 정치를 요구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그 당시에 저와 안철수 공동대표님은 그래서 대통령께 요구했습니다.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위해 <세월호진상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되, 한편으로는 범정부차원의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를 구성해서,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당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어떤 변화의 조짐도 없는 것을 저는 참으로 참담하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새는 바람이 가장 세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1년을 허무하게 보냈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커녕 어떤 변화의 조짐도 찾을 수 없습니다. 1차적인 조치라고 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한 진상규명조차 시작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이 드러날 까봐, 그것을 덮기 위한 대통령령 때문에 시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의 안전 부서를 하나 떼어서, 거기다 해경을 더해서, 국민안전처 하나 만든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눈물 흘리면서 국가 대 개조를 하겠다던 대통령의 말씀은 어디로 간 것인지, 우리 사회의 내로라하는 분들이 한 결 같이 말하던 세월호 이후의 <새로운 대한민국>은 어디로 간 것인지, 저는 우리 모두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요구한 새로운 대한민국이, 배가 다시는 침몰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는지, 배가 가라앉았을 때 구조 잘하는 나라, 꺼진 불도 다시 보는 나라, 소위 안전사회만을 요구한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꼭 필요한 일이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대한민국의 변화를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호소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도 책임이 크고 반성해야 할 사람입니다. 정치권 모두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가끔 미국의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 이야기를 합니다. 1912년에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승객이 2200명 있었는데, 1500명이 죽고 700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700명 대부분 1등실에 탄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미국인들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부자들의 목숨만 목숨인가. 부자들의 특권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미국 사회에 국민적 공론이 일었습니다. 미국 국회에서도 청문회를 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헌법이 바뀌었습니다. 1912년 4월에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는데, 1913년 2월에 수정헌법 16조가 통과됐습니다. 그것은 미국사회의 물줄기를 트는 역사적인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상 조사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인간개개인의 존엄성을 확인하고 확장하는 과정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현대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는 산업화 25년, 민주화 25년을 거쳐 왔습니다. 물질 만능주의, 성장지상주의를 부르짖으며 왔습니다. 그때는 육교가 많았습니다. 자동차가 빨리 달리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사람들이 육교로, 지하도로 건너가라. 지금은 육교를 없앴습니다.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차가 빨리 가려면 차가 위로 가거나 아래로 가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국민의식, 시민의식의 변화를 우리가 다 함께 겪었습니다.
20년 전 강남의 가장 호화로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45초 만에 무너졌습니다. 세월호는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때는 500명 이상이 죽고 1000여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그때는 국가주의, 성장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가 우리 사회를 앞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세월호만큼의 반향이 없었습니다. 삼풍백화점 무너진 게 배가 바다에 침몰한 것보다 훨씬 황당한 일이지만, 그저 ‘도덕 재무장 운동’이라는 변화만이 있었습니다. 시멘트에 모래 많이 섞은 사람, 철근 빼먹은 사람만이 나쁘다는 것에만 그치고 말았습니다. 인간존엄사회를 조성해야 한다는 말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국민의식이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며 이룩한 물질과 제도가, 이제는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데에 기여해야 한다고, 우리 국민들이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 50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가 있었고, 물질과 제도를 만들어왔습니다. 2012년 대선 이후에는 뭐라고 이름 붙여지든 새로운 시대로 이름 붙여져야 할 시기였습니다. 저는 인간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제는 물질과 제도가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데에 기여하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그런데 어쨌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서 국민들이 저건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산업화 시대의 가치와 행태를 고집했기 때문에, 많은 국민께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차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게 되고 자각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국가로부터, 정치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구나. 돈과 권력을 가진 잘난 사람들 말고, 돈 없고 배경 없는 보통사람인 우리는 함부로 취급당하고 있구나, 라고 많은 국민들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월호의 비극에서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자신과 자식들이 감당해야할 고단한 삶, 국가로부터 버려진 삶을 예감했을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 이민가고 싶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국민이 요구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 물질과 효율과 탐욕에 기반한 경쟁이라는 가치보다, 생명과 행복과 공존이라는 가치를 이제는 앞세울 때가 아닌가. 하고 국민이 소리쳐 외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국민들의 그런 말씀은 우리 헌법에 다 나와 있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님하고 저하고 법학전문대학원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배웠습니다. 우리 헌법의 중심 가치는 인간존엄사상입니다.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지향해야 한다고 헌법 전문에 다 나와 있습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가 올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에서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정치에서, 우리가 당면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모든 국민이 제대로 사람대접 받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대표 그만두기 직전 기자회견에서, 돈과 권력과 기회의 독점을 해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돈, 자본의 독점 해소를 위해 경제민주화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당은 서민과 중산층의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권력의 독점 해소를 위해서는 권력의 분점이 필요하다. 전관예우, 연고주의, 관피아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기회독점의 해소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부자 부모 만난 아이들만 비싼 사교육, 강남의 대치동 학원을 다녀야만 좋은 대학에 갑니다. 계급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야망의 계절>이 가고 <세습의 시대>가 왔다고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능력 있는 아이들이 기회를 얻지 못하면 우리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돈과 권력과 기회의 독점을 해소하는 것이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들이 자각하고 요청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모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다운 대접 받는 나라를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재벌 3세가 무릎 꿇으라고 하고, 욕하고, 손찌검해도 그 모욕과 굴욕을 감당해야 하는 나라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정직하고 성실하다고 손해 보는 일 없이, 함부로 무릎 꿇고 모욕감 느끼는 일 없이, 각자가 땀 흘린 만큼 대접받는 나라 만들자, 일하고 싶은데 나이 들어서, 몸이 다쳐서, 일자리를 못 구해서 일을 못하는 사람들, 그 분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국민이 요청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내일 오후에 훌쩍 해외순방을 떠나신다고 합니다.국민적 슬픔과 분노의 깊이, <새로운 대한민국>에 향한 국민적 요청의 무게를 대통령께서 조금이라도 이해하신다면, 결코 이런 식의 일정을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의 어느 주교의 묘비에 이런 말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저는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들부터 <새로운 대한민국>이 어떤 대한민국인지, 국민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을 확인하고 확신하는 일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을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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